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꽤 성공한 유통회사 H 사장은 관리본부장과 영업본부장을 뽑고, 그 중 한 명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준 후 은퇴할 생각에 3년 전 묘안을 생각해냈다. H 사장은 먼저 관리본부장을 뽑기 위해 대상자 3명을 사장실로 불러 “내년에 여기 계신 3명 중에서 한 명을 본부장으로 승진시킬 계획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관리본부장 대상자 3명에게 씨앗을 하나씩 나눠 주며, “이 씨앗은 제가 얼마 전 태국에서 선물 받은 것인데, 각자 집에서 잘 길러 1년 후 관리본부장을 발표할 때, 저에게 선물로 주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부탁했다. 관리본부장 대상자 3명은 본부장이 되기 위해 일도 열심히 했고, H 사장이 준 씨앗도 정성껏 물을 주며 관리를 했다. 그런데 1년 후 관리본부장 발표가 있는 날, 대상자 두 명은 화려하고 멋있게 잘 기른 나무가 심어진 화분을 가져왔는데, K 부장은 아예 화분도 가져오지 못했다. H 사장은 대상자 3명 앞에서 “제가 작년에 여러분께 드린 씨앗은 죽은 씨앗이기에 절대로 싹이 날 수 없는 씨앗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K 부장을 관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H 사장은 관리본부장은 편법을 쓰는 자리가 아니라, 정직해야 하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인도네시아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십 년 동안 계속 한 편의 영화만을 상영했던 영화관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 한 편의 영화를 수십 회 이상 보고, 이 영화관에 다녀온 횟수를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계속 관람하면서 매번 새로운 감동을 받기 때문에 영화관을 여러 번 찾을 수도 있지만, 처음 관람하는 영화는 영화에 빠져들어야 하는 반면, 반복해서 계속 보는 영화는 관객이 주체가 되어 영화를 분석하고 새로운 각도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어느 스님도 출가한 후 최근까지 시골의 자그마한 절에서 수십 년 동안 붓글씨로 ‘佛(불)’자만 쓰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오래 전 외삼촌과 같이 그 절에 갔을 때도 수십 명의 불자들이 ‘佛’자 글씨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스님은 매일 ‘佛’자를 108번 쓰는데, 쓸 때마다 마음의 상태가 달라 글씨도 다 다르다면서, 직접 자기가 쓴 ‘佛’자를 놓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계속 상영되는 영화는 기계가 계속 찍어 내는 상품과 같은데,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1970년대 중반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호남평야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우리 마을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하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큰 병 없이 건강했다. 이런 좋은 소문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날 평야지역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40대 중년 남자가 우리 마을 외딴 집으로 이사 왔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우리 마을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할머님은 나에게 평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어 병이 많고, 산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깨끗하여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할머님은 평야지역은 지하에 물이 많지만 물이 고여 있어 썩게 되고, 산간지역은 지하에 물이 적지만 물이 계속 흐르면서 걸러져 깨끗하다고 부연설명까지 해주셨다. 당시 내 기억으로도 주변 평야지역 마을에 가보면 어김없이 한 명 이상의 정신질환자가 있었다. 2000년대 전의 우리나라 보건 통계를 봐도, 고여 있는 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평야지역 사람들이 산간지역 사람들보다 수명도 짧고 정신질환자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전국에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1970년대 후반 중소도시의 모 체육고등학교에는 창단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국 상위권의 축구부와 육상부가 있었고, 그리고 오랜 전통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은 농구부가 있었다. 그래서 매년 중소도시의 각 중학교 축구부와 육상부 선수들은 체육고등학교의 축구부와 육상부에 들어가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반면, 중소도시의 중학교 농구부 선수들은 큰 경쟁 없이 체육고등학교 농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농구 붐이 일어나면서 중학교에서 축구부와 육상부 선수로 뛰었던 학생들까지 모두 체육고등학교 농구부에 몰리게 되었다. 그 결과 원래 중학교에서 농구부 선수를 했던 학생들은 중학교에서 축구부와 육상부 선수로 뛰었던 학생들에게 밀려 대부분 체육고등학교 농구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신입생뿐만 아니라, 기존의 체육고등학교 2,3학년 농구부 선수들도 축구부나 육상부에서 두각을 냈던 선수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농구 붐이 일어났다면, 농구부 선수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농구부 선수들의 진로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농구부 선수들이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내 친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발산(發散)은 감정 따위를 밖으로 드러내어 해소하거나 분위기 따위를 한껏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수렴(收斂)은 반대 개념으로 흩어진 감정이나 가치를 한 곳으로 모으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이 나타나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강한 힘을 가진 집단에는 반드시 발산과 수렴의 원칙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집단이 강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힘을 한 군데로 모으는 수렴을 해야 하고, 또한 강한 힘을 목적대로 사용할 때는 발산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나 정당이나 기업이나 사회단체 등 대부분의 집단은 발산과 수렴의 원칙을 잘 활용하면서 집단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혈기들이 모여 있는 군대에서 그것도 전쟁을 준비하거나 전쟁 중인 군대에서 또 하나의 작은 발산과 수렴의 원칙이 존재하는데, 바로 성의 발산과 수렴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전쟁 중에 일본 군대의 성적 발산을 위해 동남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뽑아 수렴 도구로 활용했고, 한국 군대 역시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 여성들을 발산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도 막강한 권력이나 부를 가진 집단이나 개인이 성적인 발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오늘은 2021년 4월 달력과 5월 달력을 관찰하면서 'Perfect middle day'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한다. 2021년 4월은 30일까지 있고, 5월은 31일까지 있어, 4월의 중간 하루(24시간)는 15일 오후와 16일 오전이지만, 5월의 중간 하루(24시간)는 16일이 된다. 30일까지 있는 작은 달은 15일과 16일 사이 0시가 한 달의 중간이고, 그래서 한 달의 중간 하루(24시간)는 15일 오후와 16일 오전이 되고, 31일까지 있는 큰 달은 16일 정오 12시가 한 달의 중간이고, 그래서 한 달의 중간 하루(24시간)는 16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의 중간 하루(middle day of a month)는 작은 달에는 이틀에 걸쳐 있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큰 달의 16일이 한 달의 중간 하루(middle day of a month)가 되는 것이다. 큰 달의 중간 하루(middle day)인 16일도 아래 달력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주의 중간인 수요일과 한 달의 중간 주간인 세 번째 주간의 칸에 자라잡고 있어야 상하좌우 대칭을 이루며 한 달의 완벽한 중간 하루(Perfect middle day of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한반도는 고조선 이후 지난 2100여 년 동안 500년에서 1000년 단위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면서 통일과 분열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먼저 BC 2333년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지역에 고조선이 세워져 BC 108년까지 한반도 최초 국가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 후 한반도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하면서부터 분열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약 400년 동안 부여, 낙랑, 동예, 삼한(마한, 진한, 변한) 등 여러 국가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강한 힘을 가진 고구려(705년) 백제(678년) 신라(992년)가 한반도에 등장하면서, 한반도는 이 세 개의 국가가 약 700년 동안 통치하는 삼국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괄호 안은 통치기간 년 수) 그러니까 이때까지도 고조선 이후 한반도는 통일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고, 여러 개의 국가와 세 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분열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통일신라가 259년 동안 한반도에서 통일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듯 했으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도, 중국에 끌려갔던 고구려인들이 탈출하여 만주를 포함한 고구려 영토 대부분에 발해(228년)를 세웠기에, 통일신라가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지난달 양평에 있는 모 신학대학교 총장과 면담이 있어 학교 본관에 도착했을 때, 로비 중앙에 꽤 큰 시계의 시계추가 계속 같은 주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로비 밖의 운동장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분주하게 왔다갔다 움직이면서 얘기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비에 서 있는 고풍스러운 시계의 시계추가 어느 교단에도 속해 있지 않고, 또한 국경을 뛰어넘어 신입생을 받아들이면서 국제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는 신학대학교의 정체성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추는 1656년 호이헨스라는 사람이 단진자 운동을 시계에 적용하면서부터 인류에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단진자(Simple pendulum)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 걸려 있는 등불의 움직임을 보고 착안한 원리다고 한다. 단진자는 실의 위쪽 끝을 고정하고 아래쪽 끝에 추를 매달아, 추를 옆으로 조금 당겼다가 놓으면 추가 중력의 작용으로 좌우로 왕복 운동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며,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총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왔을 때도 로비에 서 있는 시계의 시계추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다녀온 K씨는 핀란드 사람으로부터 잘난 척 하지 않고, 남보다 내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얀테의 법칙의 정서를 통해 평등과 겸손을 배웠다고 했다. 얀테의 법칙(Jante's Law)은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으로, 보통 사람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10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 얀테의 법칙의 핵심은 잘난 척 하지 말고 보통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얀테는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에 발표한 소설 ‘En flyktning krysser sitt spor (도망자는 궤도를 가로 지른다)’에 등장하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하는 관습법이 있어,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생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때문에, 얀테 마을에서 살려면 10개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썩 잘 살지 못 하면서도 행복지수가 상위 랭크된 데는 얀테의 법칙도 일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얀테의 법칙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고,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면서 북유럽에 지대한 영향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요즘 매일 새벽 집 앞에 있는 자그마한 산을 오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경사가 완만하여 등산하기 쉬운 코스지만, 그래도 1시간 정도 땀도 흘리고 유산소운동도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져 하루의 출발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보름 전쯤부터 등산 도중 항상 내가 머무는 곳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모든 나무 가지마다 피어나는 새싹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 친구들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새싹들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 지금은 갈 때마다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기 위해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그 곳에, 내 발걸음이 머무는 그 곳에, 내 마음도 머물러 있었고, 내 생각도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그 곳이 다른 등산객에게는 평범한 곳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명소가 아닐 수 없다. 어제 새벽에도 전 교육원장이 매일 아침 보내주는 음악편지 'Evergreen'을 들으면서 그 곳에 도착하여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었고, 내 단상에 답하는 카톡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산코스에서 왜 그 곳이 나에게 명소가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게도 내 시선과 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