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지난달 양평에 있는 모 신학대학교 총장과 면담이 있어 학교 본관에 도착했을 때, 로비 중앙에 꽤 큰 시계의 시계추가 계속 같은 주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로비 밖의 운동장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분주하게 왔다갔다 움직이면서 얘기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비에 서 있는 고풍스러운 시계의 시계추가 어느 교단에도 속해 있지 않고, 또한 국경을 뛰어넘어 신입생을 받아들이면서 국제적인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는 신학대학교의 정체성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추는 1656년 호이헨스라는 사람이 단진자 운동을 시계에 적용하면서부터 인류에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단진자(Simple pendulum)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 걸려 있는 등불의 움직임을 보고 착안한 원리다고 한다.
단진자는 실의 위쪽 끝을 고정하고 아래쪽 끝에 추를 매달아, 추를 옆으로 조금 당겼다가 놓으면 추가 중력의 작용으로 좌우로 왕복 운동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며,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총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왔을 때도 로비에 서 있는 시계의 시계추는 쉬지 않고 계속 단진자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관찰해 보니 시계추가 움직일 때마다 찰칵찰칵하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 현재를 과거로 만들고 있는 시계추가 시간을 다스리는 시간의 여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계추가 쉬지 않고 움직이듯이, 신학생들도 그들의 꿈을 차곡차곡 쉬지 않고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시계추처럼 쉬지 않고 내 인생을 만들어 왔다고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동행했던 일행과 커피숍에 들러 신학에 관한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했다.
대화 도중 K 교수가 예술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지를 지워가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K 교수의 말을 듣고 나는 시계추가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 현재를 과거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찰나에 지나지 않는 현재를 지워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지원가면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했다.
최근 근력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유산소운동(등산)만 했는데도, 갑바가 나오고 복근이 생기는 등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름다운 육체미를 만들 때 근력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군살을 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에 의하면, 예술은 이미지를 지워가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던 K 교수는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다고 했다.
회화와 함께 미술의 명택을 이어왔던 조소(彫塑)는 조각과 소조를 의미한다.
조각(彫刻)은 나무, 돌 등의 단단한 재료를 밖에서 안으로 조금씩 깎아가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고, .소조(塑造)는 찰흙, 지점토 등의 부드러운 재료를 안에서 밖으로 붙이거나 떼어내면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만족할 만한 형태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변화를 줄 수 있는 소조와 달리, 조각은 나중에 수정하기 어려워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완성된 작품의 형태를 미리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미대를 출신 K 교수가 아마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흙을 빚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형상을 완성했다는 창세기 말씀을 소조 방식이 아닌 조각 방식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지를 지워가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국가도 튼튼한 국방력이나 안정적인 경제력을 키워야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있지만, 적폐청산 같은 지워가는 작업도 잘 해야 더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있다.
찰칵찰칵 시계추 소리가 뭔가를 하나씩 지워가면서 결과를 도출해내라고 우리 사회에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단상]
만드는 것은 어렵고 지우는 것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결과를 놓고 역설적으로 따져보면 지우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