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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머무는 곳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요즘 매일 새벽 집 앞에 있는 자그마한 산을 오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경사가 완만하여 등산하기 쉬운 코스지만, 그래도 1시간 정도 땀도 흘리고 유산소운동도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져 하루의 출발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보름 전쯤부터 등산 도중 항상 내가 머무는 곳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모든 나무 가지마다 피어나는 새싹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 친구들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새싹들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 지금은 갈 때마다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기 위해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그 곳에, 내 발걸음이 머무는 그 곳에, 내 마음도 머물러 있었고, 내 생각도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그 곳이 다른 등산객에게는 평범한 곳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명소가 아닐 수 없다.

 

어제 새벽에도 전 교육원장이 매일 아침 보내주는 음악편지 'Evergreen'을 들으면서  그 곳에 도착하여 같은 배경의 사진을 찍었고, 내 단상에 답하는 카톡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산코스에서 왜 그 곳이 나에게 명소가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게도 내 시선과 내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도 시선이 머무는 옷을 사고, 식당을 고를 때도 발걸음이 머무는 곳을 정하고, 사랑을 할 때도 마음이 머무는 사람을 선택하고, 글을 쓸 때도 생각이 머무는 글감으로 글을 쓴다.

 

여행도 여정 속에서 쉬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뭔가를 하기 위해 머무는 행위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도 집에 머물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기도 하고, 회사에 머물면서 일하기도 하는 머무름의 원리 속에서 생사고락을 반복하는 것이다.

 

크게는 우리 인생도 지구촌에서 머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머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일단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머물러야 한다.

 

우리의 시선도 발걸음도 마음도 생각도 머물러야 뭔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인류는 머물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고등동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흔히 머무는 것을 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쉬는 것도 다음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의미로, 머물면서 뭔가를 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

 

돈이나 물건도 돌아다니다 나에게 머물러야 내 것이 되지, 머물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

 

오감도 우리 뇌에서 머물러야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시간을 내서라도 내 시선과 내 발걸음과 내 마음과 내 생각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리고 머무는 곳에 답이 있음을 알고,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운동장에 수 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을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만 시선과 마음이 머물러 있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머무는 곳에 삶이 있고, 머무는 곳에 답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머무름의 원리를 머무름의 미학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머무는 곳에 삷의 답이 있기에 우리는 움직이기 위해 머무는 겻이 아니라 머물기 위해 움직이는 존재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머무는 죽음에서도 삶의 답을 찾아봐야 한다.


[단상]

친구나 동료나 가족은 함께 머무는 시간이나 가치가 많은 관계라 더 돈독한 사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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