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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正義, 公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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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대선정국이 시작되기 전만해도 여야 모든 유력 대선후보들이 우리 사회의 정의(正義)를 언급하며 정의의 가치를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부터는 정의 대신 공정(公正)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약을 발표하기 시작하는 요즘은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정의나 공정이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 정의라는 잣대를 대는 것도, 공정(공평한 정의)이라는 잣대를 대는 것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자세히 보면, 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원칙이라는 차원의 정의와 분배와 기회라는 차원의 공정이라는 가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우리 국민이 정의(正義)와 공정(公正)이라는 잣대로 봐야 쉽게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크게 보편적 정의와 특수적 정의로 나눴는데, 보편적 정의는 넓은 의미의 법으로 윤리, 관습을 의미하기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정의는 특수적 정의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수적 정의도 배분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먼저, 배분적 정의(配分的 正義)는 능력이나 업적 등에서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그 가치에 비례해서 배분하는 정의고,

 

시정적 정의(是正的 正義)는 능력이나 업적에 상관없이 그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여 배분하는 정의를 의미한다.

 

대선주지들의 주요공약인 기본소득이나 아파트 공급 등 모든 정책도 배분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로 나뉘고 있다.

 

범여권은 주로 시정적 정의를, 범야권은 주로 배분적 정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는 편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의가 철학적이고 윤리학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다가, 1970년대 존 롤스의 정의론이 나오면서부터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공정(公正)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롤스가 말한 공정은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기본으로 삼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신과 능력이나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되, 격차가 생기면 그걸 줄이는 방식으로 사회가 개입하는 것이다.

 

즉 공정은 배분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를 다 포용해야 하고, 배분과 기회라는 큰 틀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공정이 정의보다 훨씬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대선주자들이 배분적 정의 차원의 공약을 발표하면 시정적 정의를 지지하는 진보가 반대하고, 반대로 시정적 정의 차원의 공약을 발표하면 배분적 정의를 지지하는 보수가 반대하고 있으니, 공정을 공약으로 발표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거기에 정치적 포플리즘까지 동원되어 우리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으니, 선거 때마다 우리나라가 공정한 사회로 발전하는 게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 국민은 배분적 정의(配分的 正義)와 시정적 정의(是正的 正義) 차원을 뛰어넘어 공정(公正)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대선정국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공정이 정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배분의 공정과 기회의 공정이 정의의 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상]

정의와 공정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정의와 공정의 잣대로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8월의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보내시고, 새로운 9월을 힘차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허수아비 논법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어제 아침 차를 타고 수도권 외곽을 달리면서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20년 전, 모 신문사에 기고한 칼럼 ‘옐로우 카드’에서 “노랗게 물든 가을 황금들녘이 정부와 사회와 국민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언급한 이후, 매해 가을 들녘을 볼 때마다 옐로우 카드를 연상해왔다. 그래서 어제 가을 황금들녘이 우리나라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도 생각해봤다. 나는 “대선정국으로 인해 불거진 굵직한 사건들을 제대로 매듭 짓지 않고, 정쟁으로 대충 넘긴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황금들녘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진영논리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쳐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특히 대선후보들의 공약이나 경선 토론회에서 주장하는 정책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면, 역시 우리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메시지로도 들렸다. 어제 오후 돌아오면서 차를 잠깐 세우고 아침에 지났던 가을 들녘을 자세히 봤더니, 탐스러운 낟알을 노리는 참새 떼를 쫓아내기 위해 나무, 짚, 옷가지 등으로 만든 농부 모습의 허수아비도 여기저기 서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허수아비가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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