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을 살아오면서 김 할아버지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허리 아픈 것도, 무릎 시린 것도, 그리고 언제부턴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도. 특히 축구 중계만큼은 완전히 손을 뗐다. TV 화면 속 선수들의 유니폼 번호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손주가 손흥민 골 장면을 보여주려고 폰을 들이밀어도, 할아버지는 하얗게 번진 잔디 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잘 봤다” 한마디로 얼버무리곤 했다. 화면 속에 누가 있는지, 공을 누가 찼는지,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중계를 마주 앉아 보는 시간은 사실 고문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주 녀석이 지난주에 할아버지 폰에 원격으로 뭔가를 깔아주더니, “여기 들어가서 큰 글씨 모드만 켜면 돼요”라고 한 줄 적어놓고 갔다. 빠른티비라는 사이트인데, 화면 위에 선수 이름이 떡하니 큰 글자로 표시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반신반의하며 그날 저녁 처음으로 직접 그 사이트를 열어봤다. 놀라웠다.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이라는 글자가 안경 너머로 선명하게 보였다. 예전 같으면 TV 앞에서 애꿎은 무료 해외축구중계 화면만 바라보며 “누가 뛰는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했을 밤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무료 스포츠중계 화면 아래쪽에 훤히 뜬 선수 이름을 보고 있으니, 누가 공을 몰고 있는지, 지금 누가 찬 슛이 골대를 때린 것인지 모든 장면이 저절로 해설이 되는 기분이었다. 중계 방송의 떠들썩한 목소리보다, 전광판에 떠오르는 그 선수들의 이름이 할아버지에게는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필요하다면 EPL고화질 중계에서 조건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할아버지가 유난히 그 큰 글씨 모드를 반긴 이유는 따로 있다. 하필 손님들이 좋아하는 활자 크기에 문득 육안으로 선수 소속팀과 등번호까지 읽히니까, 아침 시장 갔다 오는 길에 마주친 동네 영감님들하고도 농담 섞인 축구 얘기가 통하게 된 것이다. 평생 해외축구라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승 선발 라인업 하나도 꼼꼼히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이제는 초점도의 문제였다. 노안이 찾아오면서 글자가 다 뭉개지니까 포기했던 라인업, 빠른티비 큰 글씨 기능이 그걸 모조리 되살려줬다. 어제만 해도 할아버지는 손주가 좋아한다던 손흥민이 멀티 골을 넣는 장면을 혼자서 보면서, 다음 날 통화에서 자랑할 멘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이날 이 장면은 화면 속 글자 크기 한 계단이 노인의 세계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산증거였다.
지금 할아버지의 저녁 9시는 다르게 흘러간다. 거실 TV 앞이 아니라, 폰 화면을 눈앞에 최대한 뜨게 하고 지지직거리는 무선 이어폰을 꽂는다. 그 어떤 경기든 수도 없이 질리도록 보는 외로운 밤의 소일거리가 아니라, 손주와 전화 통화하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반가운 순서로 바뀌었다. 첫 대목에 이렇게 선명한 큰 글씨로 선수 이름을 깨닫기까지 이 사이트 우연찮게 알게 된 것도, 손주가 한번 가르쳐준 덕분이다. 그러나 진짜 마법은 화상통화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일어난다. 이 글의 뒤에서 곧 펼쳐질 이야기지만, 이제 할아버지의 해외축구중계 시청은 누군가와 무언갈 함께 보는 방식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변화는 지난 며칠 동안 뿌옇게 느껴졌던 화면 속 모든 이름들이 일제히 또렷이 읽히는 아주 조용한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화상통화 한쪽엔 손주, 다른 한쪽엔 콜라티비 대신 빠른티비의 무료 실시간 화면
저녁 8시, 할아버지의 낡은 스마트폰에서 얼굴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손주 녀석이 고향집 거실 풍경을 맞은편 화면으로 비춘다. 처음에는 그저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였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장소에 있어도 정확히 같은 순간, 같은 장면을 바라보며 몰입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큰 화면으로 스포츠중계를 켜 놓고, 손주는 캠퍼스 근처 원룸에서 태블릿으로 같은 경기를 틀어 논다. 한국과 서울,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공간을 하나로 묶는 건 바로 그 무료 실시간 축구 중계 화면이다.
처음에는 말이 많지 않았다. 손주가 멀리서 “골!” 하고 외치면 할아버지는 반 박자 늦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면의 작은 글씨로 흐르는 선수 이름과 해설 자막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손주가 폰으로 사회자가 레드카드를 보여주는 장면을 캡처해서 “할배, 이 선수 누군지 알아요?” 하고 물어봤다. 그 후 할아버지는 스스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화면을 보는 방식이라는 걸.
손주의 발랄한 목소리가 카메라 너머에서 들려온다. “할배, 지금 폰에 빠른티비 설치했죠? 그거 설정 들어가 보세요. 글씨 크기 조절하는 버튼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손주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손주가 두 번의 점프를 하듯 또박또박 설명했다. “찾기 어려우면 화면 오른쪽 아래에 톱니바퀴 표시 누르고, 나왔을 때 다섯 번째 칸에 보기 옵션이 있어요. 거기서 대형 글씨랄까, 그냥 탭을 크게 적용하면 돼요.” 실제로 기기 조작이 서툰 노인에게는 이 몇 초에 불과한 조작이 마치 보물찾기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막상 화면을 바꾸고 나면 다양한 변화가 한 번에 눈에 들어온다.
해외축구중계를 보는 데 가장 손해인 점이 무엇일까. 경기는 킥오프부터 후반 추가시간까지 90분 넘게 이어지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지 못하면 재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할아버지는 그 점이 너무 답답했다. 그런데 이 앱의 글씨 설정을 바꾼 뒤 선수 이름이 선명하게 읽히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시티가 헤딩골을 넣었을 때 옆에 작게 뜨던 숫자와 이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 3초 만에 텍스트부터 자막 중심의 해설 요약까지 확대되고, 특히 몰아붙이는 듯한 속도에서 공이 골문 안으로 굴러들어갈 때 그 장면이 더 반가워진 이유다. 시골에서조차 말로만 듣던 반전이 훨씬 실감 나게 다가왔다. 골망을 평범하게 갈랐어도 어려운 전문 용어 해설까지 캡션에 다 담겨 최신 축구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이는 단순한 화면 크기 이상의 정보량을 전달한 셈이다.
그 뒤로 화상통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축구 경기가 한창인 저녁엔 통화 연결음 대신 작게 켜둔 중계음이 섞여 나오고, 때로는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선수의 태클 장면에 반응하기도 했다. 손주는 느닷없이 어시스트를 만드는 방향을 짚어 주기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보다 늘 한발 늦지만 자꾸 WHY를 되묻는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전술 용어들이지만, 아들이던 시대의 화려한 플레이를 아는 세대인 탓인지 그런 이야기마저 즐겁게 붙들고 늘어진다. 팝콘이나 간식을 곁들인 특별한 암묵적 루틴까지 조금씩 공유되면서, 두 사람은 굳이 한자리에 앉지 않아도 지역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응원 동지가 됐다.
특히 눈값이 높아진 건 두 세대가 공통의 대화 주제를 갖게 되면서 부터다. 저녁만 되면 두 노인이 시골집 목욕탕에서 고민했던 그루밍 담소 와중에 길어진 이야기 말고도, 핸드폰 왼쪽 구석에 비친 젊은 목소리가 긴장감 있게 중계 상황을 중재해 준다. 할아버지는 사실 축구 선수 이름 외우는 데에 점점 논리를 허비하지 않는다. 더 좋아하는 건 디테일을 기억한 다음 그 자리에서 손주에게 되묻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무료스포츠중계 방식에 호기심이 붙어, 짜릿한 반칙 판정 이야기를 주워 듣고 손주에게 확인 요청을 하기도 한다.
화면 구석쪽의 원격 감정 연결은 어느 새 할아버지의 저녁 일과로 굳어졌다. 전화를 걸 때는 화면에는 흥분한 노인과 대학생이 동시에 나타나고, 사이사이 그 경기 중계 채팅창 반응까지 짧게 공유되면 고읍의 정적이 깨진다. 퇴근 후 서울의 젊은이라 부를 수 있는 성인이 고향 아버지니까 그런 정겨운 미감까지 속속들이 이해하는 순간들이다. 서로 같은 LCD 화면을 눈 크게 뜨고 구경한 경험을 먹고 성장해서가 아니라, 흥미로운 오늘 경기의 그림자가 담긴 실시간 스트리밍 속에서 서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손주가 우연히 소개한 이 서비스를 시작으로, 이 시골집 저녁은 여는 즉시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 전철에 몸을 싣거나 영락없는 과속 속의 고속도로로 달려가지 않아도 좋은 자리에서 무료가 걸린 열기가 과열되는 표정들을 마주하게 되니, 그러한 일상의 물결이 할아버지 폰 화면 전체를 부드럽게 적셔 준다. 푸근하고 때 묻은 구형 학술 노트필담 약간 남발한 장정짜리 통화보다 훨씬 개운한 울림까지 있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자식이 거문고나 기타처럼 답답하게 머뭇거리며 말문을 여는 스타일이라 서먹함 탈피에 진심이 아닐까 싶었는데, 지금 전화가 터지면 자연스레 허허대는 웃음이 흘러나오는 이 전풍 혹은 축포 같은 목소리가 노인의 gương mặt에 가장 어울리는 살아있는 웃음 표정이다.
빠른티비 덕분에 덩달아 생겨난 틈새엔 것들은 별도로 복잡할 것이 없다. 단지 재생 속도 하나? 종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세대 호불호를 비켜 나가는 화합의 창구가 열린다. 먹기 간편한 감자 조각 같은 젊은 취향의 군것질거리와 예전 같은 손맛 나는 차 소비로 어우러지다 보면 골 냄새를 맡은 강아지들처럼 두세 시간마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간다. 어떤 흥미로운 반칙이든 말미에는 누군가 웃곤 한다, 동의하니 아니니 간에 주말 친선과 함께 나누는 데에서 올라타는 신명이 더 소중해.
시력 문제를 지닌 사람에게 화면 속 큰 자막이며 선수 명판 크기까지 놓치는 순간 없이 매 경기를 따라가기는 보통의 스포츠 시청에서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하루 10초 투자로 늘어난 큰 수치는 온전히 손주와 공유할 한 끼같이 활기찬 옵션이다. 자작나무 각도 엇갈려 국수를 씹듯 굴어들이던 이론, 그 반 쓰린 야네 에피소드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접속 자체가 어우러지는 시청 경험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작은 접점에서 싹 틔으며 형성된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풍토에서 자라나 이제는 같은 국제 경기 대표팀을 노래하는 인생들을 만나니까. 그러니까 상대는 대한민국 오ㅐ 준우승과 맞먹는 세대 초연결 축제. 60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목소리가 응원 시작 다섯 분 전 영통에서이다. 배구 서버 류 다시 많지는 않는 시간대지만 세 살버릇 여든 간다는 정답처럼 이 늦저녁의 축포 는 현관문 패킹 하여 자칫하면 차가울 수 있는 저녁의 공기를 소리 나는 대로 뜨끈하게 녹였다. 내일 또 주말에는 손주가 말을 꺼낼 것이다. 오늘 자랑하던 무적 리버풀의 강속구 수비에서부터, 화면 멀리 그리는할아이템까지 전개가 출렁대는 무대 안의 모든 등 위기에 얼굴 붉히며, 그것이 바로 새절이 역 훨씬 가까운 있는 어울림이다.
대화 요지 하나만 잡더라도, 눈보다 그려지되 섣불리 행동 말아야 할 젊은 세대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옆에 등 진 지 만년 실검 즐기던 할아버지 제스처가 어느 덧 손주가 확실히 설명했다는 존 손박한 손맛에서 웃 장사들을 다 끌어 모은다. 하긴 중계 채널이 바뀌 보기 눈앞에 프리미어, 더 분데스 리가 알아가는 입심 큰 하면서 아 오늘 파리 잔망 몸무게 질 등을 익숙한 날들이 썩 나쁘진 매일 저녁 손주의 읊조림까지 즐겁다. 콜라티비에서 에어컨 흰 흐 는 앱 아이콘 던지는 미학에 당사자 나 모델 영문 빛 담은 손하기 목 오히려 구동 속 포즈 아나운서 족 편 중 즐 하나, 난 간 명 분 정. 결국 전보다 훨씬 시원하게 울리는 별 화 재 울 음 다 생각 간단 억하심 또 특히 나누 여 그 어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