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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의 세상읽기] 징계와 연단


징계와 연단




 

 


[아들의 고통]

 

대학 졸업식, 소위 입관식, 포병학교 입교식.,,,

몇 년 년 전 ROTC 과정을 마치고 대한민국의 늠름한 장교가 되기 위해 교육과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아들의 일정이다. 당시 졸업식장과 임관식장에서 제복 차림의 아들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학생들은 대학생활을 나름대로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지만 아들은 제약된 생활과 훈련 등으로 자유롭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군사훈련에서도 힘든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들은 주말 주일도 없이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제주도에서 입문교육을 받고 있다. 신입사원이 기업에서 적응하기 위한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매우 상기된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빠, 내가 슈퍼에서 과자를 모르게 훔쳤는데 들키지 않았어, 가게 아저씨가 바보야아들은 자기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오히려 첩보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나쁜 행위이며, 큰 죄가 됨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며 혼내주었고, 아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3일 동안 과자금식령'을 내려 징계했다. 과자를 먹지 못했던 3일 동안 아들은 무척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사건 이후 아들은 지금까지 남의 것을 훔친 적 없이 잘 자라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아들을 크게 혼낸 적이 있다.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에 열중하던 아들이었지만, 2학기 들어 성적이 조금 떨어지자, 나는 한 달 동안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역시 아들은 컴퓨터를 접할 수 없어 힘들어 했지만, 그 결과 내 충고를 잘 받아들인 아들은 좋은 성적을 얻게 됐다.

 

 

[징계와 연단]

 

위 예에서 나는 아들의 첫 번째 범죄를 발견하고 아들을 경찰에 절도범으로 신고하지 않았고,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징계만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예에서도 아들 스스로 알아서 대충하기를 원치 않고, 계획을 세워 목표를 달성하도록 연단을 시켰다. 아무튼 아들은 위 두 가지 예에서 일정 기간 동안 매우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들을 정죄하지 않고, 징계와 연단(훈련)이라는 방법으로 아들의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아버지로서의 아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우리 삶속에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통이 자주 찾아온다. 우리는 자신의 정신이나 신체가 자유롭지 못하면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고통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잔꾀를 부리기도 한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대부분 징계(징계가 심해지면 처벌로 발전)와 연단으로 나타난다. 만약 우리에게 고통이 오면, 그 고통이 잘못이나 범죄로 인한 징계인가? 아니면, 미래의 목표달성을 위한 연단인가? 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라면, 그 잘 못을 놓고 반성하며, 더 이상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하고, 아무 잘못도 없지만 더 큰 비전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연단이라면, 그 고통의 뜻을 헤아리며 참고 인내로 이겨내야 한다. 어찌 보면, 징계와 연단을 잘 통과한 자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경우, 연단보다는 징계로 인한 현재의 고통이 더 많은 편이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금욕으로 인해 저지른 죄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청소년에게 다가오는 고통은 대부분 연단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미래의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오는 고통이야말로 장래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한 연단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아들이 포병학교에서 겪었던 고통과 지금 제주도에서 입문교육 중 받는 고통은 분명 징계의 고통이 아니다. 다만 미래를 위한 연단의 고통일 뿐이다. 아들은 포병학교 훈련을 이겨냈기에 군 장교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또한 지금은 입문교육을 성실하게 받고 있으므로 앞으로 회사생활도 잘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일 뿐이다]

 

기업에도 항상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만약 기업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당하는 고통이라면 징계나 처벌로 볼 수 있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면서 발생하는 고통은 징계가 아닌 연단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징계의 상황을 연단으로 보가나 연단의 상황을 징계로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기업이 부도 위기에 놓일 때, 대부분 기업은 '위기는 기회다'며 위기 자체를 해결하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다가 결국 그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바로 기업에 닥치는 위기(징계)를 직시하지 못한 데서 오는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은 부도 위기가 오면 일단 위기의 원인을 잘 분석하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최대의 노력을 통해 먼저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위기를 잘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는 기업만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한국 기업이 위기 앞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위기가 기회다'라는 사탕발림에 더 폭삭 주저앉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희망을 주기 위한 구호 정도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오너나 임원들이 위기를 외면한 채 도피성 내지 회피성 기회만을 찾고 있다면 그 기업이야말로 결코 회생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도 징계와 연단을 잘 구별해야 할 이유다..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도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다. 잘못된 관행과 습관이 만들어낸 사회적 고통과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정치적 문화적 고통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 역시 징계와 연단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은 고쳐나가고, 미래를 위한 고통은 인내심으로 참고 극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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