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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비법은행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집 근처에 있는 추어탕집에 갔다.

 

그런데 전에는 손님들이 북적대고,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던 식당 분위기가 너무 조용하고 썰렁해서 깜짝 놀랐다.

 

추어탕집은 10년 전 개업 당시부터 그 어느 식당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했고, 특히 70대 사장은 요리비법을 아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기로 소문난 식당이었다.

 

계산대에서 한가하게 앉아 있는 아들에게 손님이 왜 없냐고 물어봤더니, 아들은 "아버님이 3개월 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계셔서, 전과 같이 추어탕 맛을 내지 못해서 손님들 발길이 끊겼다"고 말했다.

 

추어탕 한 그릇을 시켜 먹어보니, 예전 같이 독특한 맛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그래서 나는 맛도 맛이지만, 사장 혼자만 추어탕 요리비법을 알고 있다는 스토리가 마케팅전략이 되어, 사람들에게 추어탕의 맛을 더 돋구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미국 1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인 코카콜라의 제조비법 관리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코카콜라의 맛은 원료의 혼합비율과 혼합 순서에 있는데, 이 제조비법을 아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 중 단 두 사람으로 하고, 이 두 사람은 같이 비행기를 타도 안 되고, 같은 장소에 있어도 안 된다는 게,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코카콜라 제조비법 관리 스토리다.

 

이유는 한 명이 사고로 죽으면 그 비법을 알 길이 없게 되고, 코카콜라의 원래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비법을 문서로 금고에 넣어두고, 금고는 한 명이 죽었을 때, 새 비법 전수자에게만 오픈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비법을 알고 있는 한 명이 가짓말을 못 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는 생각도 든다.

 

코카콜라의 제조비법 관리 방법이 마케팅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비법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사 시 대책까지 세웠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만약 비법은 아니지만, 나 혼자만의 비밀, 즉 가족도 모르게 돈을 누군가에게 맡겼거나, 타인 명의로 땅을 사두었거나, 등등의 비밀이 있다면, 최소한 가족 누군가에게는 공유해서 유사 시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몇 개월 전부터 사세가 기울고 있는 친구 회사도 1년 전 친구 아버님의 갑작스런 사고로 친구가 물려받았지만, 친구가 회사의 주요 업무나 거래처 정보를 정확히 인수받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중국의 황제들도 해독제가 없는 독약은 다 없애고 해독제가 있는 독약만을 유통하게 한 후, 유사시를 대비해서 황제 자신과 충신 한 명만 그 해독제를 보관한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제조비법을 지키기 위해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세워 100년 이상 관리하고 있듯이, 우리 기업도 비법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전수도 잘 하고 유출도 막아야 할 것이다.

 

최근 기업들의 정보가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금 번 기회에 기업의 제조비법이나 기타 비법만 관리하는 비법은행을 만들어 비법은행이 기업의 비법을 관리해줌으로 비법의 유출이나 전수 차단을  미연에 방지하면 어떨까?

 

기업의 비법을 컴퓨터나 사무실이나 금고 같은 곳에 넣어 보관하면 분실이나 유출 위험이 많지만, 비법은행에서 관리하면 더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비법을 전수할 때도 공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도 자신만이 알고 어떤 있는 비법이 있다면, 그 비법을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꼭 해봐야 한다.

 

수 천 년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 혼자만 알고 있다가 사장되었던 비법들이 잘 전수만 되었어도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캡틴마블에서 무의식 상태에 있는 사람의 뇌 속에 있는 기억을 출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현실적으로 기억을 빼내는 작업이 가능했다면 추어탕집 아들도 추어탕집 사장의 기억 속에 있는 추어탕 요리비법을 알아내고자 애썼을 것이다.

 

[단상]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나 비법이 있다면 최소한 비법노트라도 만들어서 정리해두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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